우리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는 주님!
우리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는 주님!
큰마음 먹고 성경 통독이나 필사를 시작하신 분들, 어느 대목에 이르러 살짝 햇갈리기도 하고 혼돈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 그리고 성조 이야기에 등장하시는 하느님의 몇 가지 모습이랄까 속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이 애써 창조하신 다음, 그 모습을 보시고 좋아하셨던 하느님이셨지만, 가장 애지중지했던 인간이 타락하고 불순명합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노아 일가만 빼고 싹 다 수장시키십니다. 엄청난 홍수를 통해 인간 세상을 쓸어버리신 것입니다.
이제 악인들이 말끔히 사라졌으니 됐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못된 인간들의 교만한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홍수가 와도 대피할 수 있는 엄청난 높이의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신 하느님께서 이번에는 홍수까지는 아니지만, 말을 뒤섞어놓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고 괴롭히는 파라오와 그의 군사들을 홍해 바다 한 가운데 단체로 집어넣으셨습니다. 홍해 바다 몰살 사건으로 인해 이집트 왕조가 받은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진노하시는 하느님, 싹 쓸어버리시는 하느님의 이미지가 은연중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 하느님 아버지상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 신약의 하느님뿐만 아니라 구약의 하느님 역시 사랑의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 “나는 이사악의 하느님이다.” “나는 야곱의 하느님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조들과 인격적인 관계, 친구 관계를 맺고자 하셨습니다.
성조들 역시 한 부족한 인간이었습니다. 실수를 연발하고,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거짓말을 남발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때 그때 진노하시고 벌주시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다시 참아주시고, 또 한번 기회를 주시고, 다시 한번 언약을 맺으시며, 우리 인간을 당신의 창조 사업과 인류 구원 사업의 파트너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자상하고 따뜻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얼굴이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에제키엘서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에제 18, 21-23)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