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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3 살레시오 가족 생활지표 및 포스터

2022.10.12 22:56 2266 S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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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살레시오 가족 생활지표 주제 설명]


다운로드: 2023 살레시오 가족 생활지표 주제 설명 KOR.docx



2023년 생활지표

 

오늘날 인류 가족 안에서 누룩으로.

돈 보스코 가족의 평신도 차원

 

번역 서정관 수사

 

저는 먼저, 2023년 생활지표가 두 대상자 그룹을 수신인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무엇보다 돈 보스코의 가족이 현존하는 전 세계 곳곳의 어린이청소년 및 청년을 대상으로 합니다동시에 자신들의 고유한 평신도 차원을 발견하도록 혹은 재발견하도록 초대받는 살레시오 가족의 모든 그룹을 대상으로 합니다.

 

어떻게 서로 다른 두 수신자들을 겨냥할 수 있을까요그 대답은 간단합니다우리 교육과 영성의 가장 큰 특징에 비추어 볼 때우리의 목표는 소년들과 소녀들 특별히 청소년과 청년들 각자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룩과 같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인류 가족의 빵이 부풀어 올라 더 맛있게 되도록 도움을 주는 좋은 누룩 말입니다그들 각자는 예수님 곁에서 참된 사명을 지니는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혹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좋은 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몸담고 있으며 모든 나라에서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남녀 평신도인 돈 보스코의 가족을 위해서 평신도 차원의 발견을 목표로 하는 명확하고도 도전적인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지금 인류에게 절실한 참된 누룩이 될 것을 요구받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삶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살레시오 가족 안에서 축성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동일하게 인류애의 빵 반죽에 들어간 누룩이 되고우리 형제자매들의 복음적 평신도성에 의해 풍요롭게 되도록 그들 가까이 살 것을 제안받았습니다한마디로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는 가족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루카 13,20-21)

 

누룩은 조용히 일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내적 역사하심이 그러하듯 발효는 침묵 속에서 일어납니다. 사실 누룩이 밀가루와 반죽에 작용해 전체 덩어리를 부풀리는 동안 누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활동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가장 내밀한 단면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령, 즉 마음에 있는 누룩의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누룩이 접촉을 통해 작용하는 것처럼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생활지표의 주제로 선정된 누룩의 비유는 복음 및 교육적 차원의 큰 지혜를 담고 있으며, 예수님이 삶으로 살아내고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해석이 있습니다. 올해의 생활지표에 대해 우리가 선택한 해석은 바로 평신도 사명과 온 세상 돈 보스코 가족의 사명을 인도하면서 누룩을 하느님 나라의 열매와 성장의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생명으로 부르시는 선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으신 성소 선물의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합니다.”(갈라 5,9). 누룩을 조금만 넣으면 밀가루 반죽이 두 배, 세 배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빵을 만들 때 반죽에 넣어 발효하게 만드는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이 ‘실체화’되도록 작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의 비유에서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가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들 중 누룩은 많은 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조금 사용되지만, 유일하게 생명을 지닌 성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반죽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반죽을 알맞은 상태로 변화시키는 독점적인 능력을 지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현실에서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그 나라의 일원으로 들어가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지 말고 하느님 사랑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세상의 시선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을 선호하시는 하느님 눈에 귀하게 보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느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는 주님께서 주도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입니다. 세상 문제의 복잡성에 직면한 우리의 연약한 작업이 겉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만일 하느님의 사업 안으로 들어간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승리는 확실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땅에 있는 모든 좋은 씨앗을 싹트게 하고 자라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직면하는 비극, 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신뢰와 희망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그것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에 선과 평화의 씨앗은 싹이 트고 자랄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2015년 6월 14일, 삼종기도 강론)



1. 빛과 그림자 사이, 우리 세상 안에서 싹트는 하느님 나라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 12,14-21)   


o 바로 여기 가장 평범한 사람들, 치유가 필요한 병자들 가운데서 누룩으로 일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이는 사회적 계급이나 혈통의 차이가 없는 백성 즉, ‘laos’의 한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의 ‘평신도 얼굴’(volto laicale)입니다. 그들은 모두 빈곤과 구휼의 대상이라는 처지 아래 뭉쳐 있는 것 같았습니다.

o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은 그분의 모든 설교를 지배한 상징, 그분의 모든 활동에 의미를 부여한 실재, 즉 ‘하느님 나라’입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를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구절로 요약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표현은 복음서에 122번, 예수님의 말씀에 90번이나 나오므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것이 더욱 분명합니다(카를 라너).

o 하지만 말씀과 천국 선포는 예수님 설교의 중심 주제일 뿐만 아니라 그분 비유 말씀의 기준점이요 많은 가르침의 주제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또한 당신 활동의 큰 부분을 구성하는, 심지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기까지 우정을 구축하시는 상징적 행동의 내용이었습니다. 치유와 구마 (…) 사실, 소외된 자들과 맺는 친교로 그리고 가장 가난하고 작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예수님은 가장 미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제로 보여 주시면서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왕국에서의 삶을 온전히 사셨습니다.

o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하느님 나라로서 우리는 그 세상 안에 많은 좋은 것과 함께 고통 역시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압니다. 인류 가족인 우리의 존재 및 행동 양식에서 발생하는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의 왕국을 세우시는 하느님의 ‘행동 양식’을 향해 반드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분의 존재와 행동 양식을 취하면서- 우리는 그분과 협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왕국이 아니라 우리의 왕국으로 변하길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의 것이 아닙니다.

o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통해 설명하는 바처럼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육화한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존재 양식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 12, 19-21)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으기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나라들입니다. 살레시오 가족으로서 우리를 특징짓는 보편적인 개방성은 그리스도 왕국의 복음과 뛰어난 조화를 이룹니다. 교회는 99% 이상이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비율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하느님 왕국의 누룩인 동시에 반죽입니다.

o 때로는 우리의 인간적인 기여나 작은 노력이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분명 하느님 대전에서는 항상 중요하게 여겨질 겁니다. 모든 것의 궁극적인 이유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헌신적 노력에 우리가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 계산하면서 그 결과의 효율성을 측정하려 들면 안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 왕국의 완성과 선교 사명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해로운 콤플렉스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이는 우리를 가로막고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o 하느님의 ‘눈’ 아래 그리고 ‘마음’ 앞에 있으면서 우리는 작음과 겸손을 연약함으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많은 것’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결코 ‘충분하지 않다’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을 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헌신, 노력 그리고 반죽 속으로 스며든 빈약한 누룩인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항상 그분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조건에서 말입니다. 



2. …에 대한 인류 가족의 필요

이 세상에서 각 사람은 인류 가족 안에서 건강하고 형제적인 생활 방식으로 살도록, 즉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누룩의 비유와 이 생활지표의 제안은 우리를 시간과 역사의 역동성을 통해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빵 덩어리에 완전하게 혼합된 누룩은 발효되기까지 자체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의 시간, ‘카이로스’는 시간이 공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역동성  속으로 들어가도록 우리를 가르칩니다. 특히 가상현실 및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즉각적이며 상호작용하는 현존의 네트워크 환경을 만드는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소통하고 일하고 함께하는 방식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시간의 의미를 심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류 가족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많은 좋은 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아직 극복하지 못한 많은 고통이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들의 투쟁과 쟁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더욱더 숭고한 목표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는 하나의 여정입니다, 사랑, 정의, 연대와 함께 선은 한 번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쟁취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제기하는 불의한 상황에서 여전히 많은 형제자매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도 되는 양, 과거의 성취에 만족하며 머물러 즐기고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가족이 많은 부족함을 지닌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a. 가장 미소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와 존엄의 필요

(「모든 형제들」, 15-17, 18-21, 29-31, 69-71, 80-83, 124-127, 234)

b. 진리의 필요

(「신앙의 빛」, 23-25; 「모든 형제들」, 226-227)

c. 평화와 형제애의 필요

(「모든 형제들」, 88-111, 216-221;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63-167)

d. 하느님의 필요

(「신앙의 빛」, 50-51, 1-7, 35, 58-60)

e. 공동의 집에 대한 보살핌의 필요

(「찬미받으소서」 참조)

f. … 에 대한 필요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좋은 일을 내일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인류 가족 안에서 누룩이 되도록 돈 보스코의 가족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누룩에 대한 복음적 역동성의 비전으로 인도된 우리는 영적 부르심의 풍요로움을 재인식하고 심화하길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 안에서 수도자 그리고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들이 지니는 신앙의 힘, 가정의 아름다움, 삶과 일터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사회에서 하나의 선물이 됩니다.



3. 평신도: ‘세상 속에서 세상을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인

일종의 확신에 찬 관습은 성덕에 관한 커다란 혼란을 야기했고, 성덕이란 오직 수도원에만 있으며 평신도의 삶이나 세속적 삶에서는 거의 혹은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인 양 왜곡시켰습니다. 이러한 성과 속의 분리가 역사 안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 하느님이 아버지시라는 사실로부터 우리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이 유래합니다.

이러한 보편적 형제애로부터 연대, 애덕 및 친교에 대한 요청도 유래합니다.

2. 성자의 육화강생과 함께 그 어떤 세속적 현실도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낼 수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3. 인간의 인격을 성령의 성전으로 인식하는 동안, 인간의 실존은 거룩함과의 만남을 위한 가장 적합한 환경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신학적으로 교회 전체의 평신도성은 ‘교회-세상’의 관계에 대한 의미로부터 출발하며, 또한 일반적 이해에서는 공통 사제직, 예언직, 왕직 차원에 대한 의미로부터 출발합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는 비록 각자의 특정한 방식으로 이러한 평신도성을 이행하거나 발전시키지만, 그와 같은 다양한 직무와 역할들로 세상을 섬기며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가 지닌 구원의 의지를 드러내야 하는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는 사회 안에서 그리고 역사와 세상 안에서 ‘실존과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차이를 지니며 다양한 사목과 활동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평신도, 특히 그리스도인 평신도, 돈 보스코의 가족으로서의 평신도로 부르심 받는 일은 가정의 특별한 소명과 세상에서의 직업적 소명이라는 수많은 경우를 통한 동일한 평신도적 삶에서 비롯됩니다. 평신도들은 사회와 역사 안에서 복음적 가치를 확립하며 증진하고 유지함으로써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어(축성된 세상)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기여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평신도의 존엄성을 인정함으로써 교회 내에서 그들의 기능이 분명해지고 따라서 교회를 위한 그들의 필요성도 명확해 집니다. 공의회는 평신도의 사명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현세적인 일을 관리하고 질서를 잡는 일’과 ‘그 내부로부터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로 봅니다. 평신도는 ‘그들을 통해서만 세상의 소금으로 변할 수 있는 그곳, 바로 그 장소와 상황 속에 교회가 현존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마주하는 그 전면에서, 교회는 신심 깊은 평신도에 대한 필요성을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들이 없다면 교회가 갈 수 없는 그곳에, 교회는 오직 평신도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일 우리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고 말해 주면, 우리는 그를 찾으러 밖으로 나갑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자세로서, 성령께서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 깊은 곳을 찾아오심을 깨닫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말의 의미는 인류애로 충만한 그 모든 일을 추구하는 자세를 갖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온전한 인간만이 바로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개방하는 데에 충실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이 세상을 ‘하느님의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대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발산하며 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우리 인간의 활동으로 그렇게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입니다.



4. 돈 보스코의 가족은 누룩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살레시오 역사에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특별히 빛을 발합니다. 

“1855년 6월 24일, 오라토리오에 겹경사의 축제가 있었다. 말할 수 없이 좋은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 모든 토리노 사람들이 이 도시의 수호성인 축일을 영광스러워하며 경축했는데, 이날은 또한 요한 보스코의 본명 축일이기도 했다. 모두가 그에게 애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돈 보스코는 관대한 마음으로 화답했다.

1855년 6월 23일 저녁, 그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나를 위해서 축제를 열겠다니 감사합니다. 나도 여러분에게 각각 가장 원하는 선물을 주고 싶어요. 그러니 모두 쪽지에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적어 주세요.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여러분이 왕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겁니다.’

쪽지를 읽으며 돈 보스코는 신중한 혹은 장난스러운 요구에 미소를 지었다. 어떤 아이는 ‘1년 내내 먹을 수 있도록 100kg의 누가 사탕’을 원했고, 어떤 아이는 ‘집에 두고 온 것과 같은 강아지’를 요구했다. 도미니코 사비오의 친구인 조반니 로다는 ‘의장대의 것과 같은 트럼펫을 원합니다. 악대에 가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적었다.

반면 도미니코 사비오의 쪽지에는 ‘제가 성인이 되도록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다섯 단어만 적혀 있었다.

돈 보스코는 소년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네 어머니가 케이크를 만들 때 설탕, 밀가루, 달걀, 누룩 등 다양한 재료와 그것들의 혼합비가 적혀 있는 레시피를 사용하시지? (…) 성인이 되려는 데도 역시 레시피가 필요하단다. 그것을 너에게 선물로 주마. 함께 잘 버무려야 할 세 가지 양념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첫째: 쾌활함. 너를 어지럽히고 네게서 평화를 앗아 가는 것을 주님은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멀리 쫓아 버리렴.

둘째: 의무에 충실함. 학교 생활에 집중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정해진 때에 마음을 다해 기도드리렴.

셋째: 선행을 베풀기. 설령 너에게 약간의 수고와 노력이 되더라도 네 친구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을 도우렴. 성인이 되는 레시피는 이게 전부란다.

도미니코는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 두 가지 ‘양념’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에게 선행 베풀기는 더 많이 할 수 있겠고, 생각하고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이를 시도했다.”


설탕, 밀가루, 달걀 및 누룩을 포함하는 어머니의 케이크 조리법처럼 돈 보스코는 청소년, 특히 도미니코 사비오에게 다음과 같이 성인이 되기 위한 레시피를 제안했습니다(1855년 6월 24일). 쾌활함을 유지하고, 의무를 다하며 선을 베풀거라.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심으신 작은 공간 안에서 우리가 누룩이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완전한 프로그램이란다.

다양한 사회 배경, 신분, 직업적 경험 등을 지닌 사람들인 우리는 카리스마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친교를 이룹니다. 우리는 그 사명으로 일치를 이루며, 돈 보스코가 알고 있던 소통 방법과 같은 카리스마를 지니며 그로부터 원동력을 받습니다. 이것이 1841년부터 1859년까지 18년 동안의 오라토리오 초창기의 특징입니다! 회헌의 첫 번째 초안은 가장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을 ‘착한 그리스도인, 정직한 시민’으로 만드는 데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하는 하느님 백성의 시너지 효과를 강력하게 반영합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하느님 백성의 집합체로 태어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카리스마와 사명의 본질입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살레시오 가족에게 제가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분명한 사실에 관해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세상, 오늘날의 인류 가족 안에서 진정한 누룩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중요한 일을 오직 함께하는 친교 안에서만 수행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와 공유하는 사명에 대해 살레시오회 전체에 강력히 호소(돈 보스코의 온 가족에게 필요한 호소)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히 제24차 총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밝힌 친교의 교회론에 대한 카리스마적인 응답이었다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돈 보스코는 발도코를 시작할 때부터 수많은 평신도, 친구, 협력자들을 청소년을 위한 자신의 사명에 참여시켰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때부터 바로 “남성과 여성, 평신도, 교회 구성원들로부터 공동 책임과 공유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여러 저항에도 불구하고, 제24차 총회가 제안한 평신도와 함께 사명을 공유하는 모델은 돈 보스코의 모범에 상응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유일한 것”  입니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입니다.


돈 보스코 사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들의 구원과 더불어 그 사회의 전환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2020년 생활지표(“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착한 그리스도인, 정직한 시민)가 생각납니다. 예방교육 체계는 단지 개인이 ‘현세와 영원 속에서 행복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할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에 있어 가장 미묘하고 값진 부분”(회헌, 1)으로서 교회 그리고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파멸시키는 악의 고리라는 악순환에 빠지는 일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대신에 모두를 위한 미래와 성장의 가장 큰 자원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돈 보스코의 광대하고 대범한 비전, 지칠 줄 모르는 근면성, 장애물에 맞서는 용기 등은 이러한 사회적 전환과 세계적 규모의 청소년 복음화라는 시각에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소중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해결책이자 대응이라고 봅니다. 이는 청소년들을 신뢰하며 어떤 하나의 문제로 보지(어쩌면 두려워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움직일 때, 청소년 세계에서 이처럼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뻗은 우리 현존의 잠재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돈 보스코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명은 분명히 청소년의 선익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 사회와 타인에 대한 봉사, 만인을 위한 공공서비스, 정치의 존재 이유 등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그 누구든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기에 돈 보스코 역시 다양한 수준의 위정자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카리스마로서 청소년들을 돌보는 동일한 열정을 오늘날 함께 구현한다면, 우리의 공통된 목소리는 고해소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까지 다다르고 들릴 수 있습니다. 세상과 변두리에서 교회가 되는 이러한 방식은 현대 교회의 가르침에 매우 합당합니다(「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부터 「찬미받으소서」까지, 그리고 많은 권위 있는 문헌의 가르침). 만일 돈 보스코의 가족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교회가 되는 일은 실현될 수 없습니다.


돈 보스코 가족 성소의 상호 보완성

청소년 교육에 진정으로 효과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공동 책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중요하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관계없는 이들로 남아 있기를 원치 않는다면, 살레시오 가족으로 일치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사명 안에서 세상에 현존하는 수많은 평신도와 함께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양성 안에서 이는 사명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요구 사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족정신 안에서의 친교와 광범위한 살레시오 운동

우리 모두는 새로운 양성이 요구되는 한 배를 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세상에 대한 관심이 그러한 분야이며, 또한 모든 피할 수 없는 광활한 분야인 통합적 생태학 분야가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배워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학습이 어떤 공동의 여정으로 변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현실에 잘 맞게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지식 습득 과정에서 생겨나는 역동들 또한 사명과 양성을 함께 수행하는 방식으로 변화됩니다.

이 새로운 사명의 형태가 교회와 세상 그리고 청소년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누룩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것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반죽이 달라졌습니다. (…) 우리는 다시금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함께할 때만 가능합니다. 결국 우리는 처음 시작의 원동력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돈 보스코는 모든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함께 양성되어 갔습니다. 맘마 마르게리타나 다른 수많은 협력자들과 같은 평신도가 없었다면, 그리고 돈 보스코의 소년들, 그들 중 아주 잘 알려진 도미니코 사비오와 같은 이가 없었다면, 돈 보스코나 그분을 뒤따르는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이 되었을 겁니다.



5. 좋은 열매를 맺는 큰 나무의 그늘에서

살레시오 가족의 시복시성 청원 촉구를 위한 제2차 세미나 폐막 서한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돈 보스코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덕에 대한 한 가지 전통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음을 재인식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다양성 안에서 표현되는 삶의 상황과 형태라는 카리스마의 육화가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 청소년과 어른, 축성 생활자와 평신도, 주교와 선교사들로 시간과 공간이 다른 역사적 · 문화적 · 사회적 맥락 안에서, 그리고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또한 선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유산을 드러내면서 살레시오 카리스마를 하나의 빛으로 빛나게 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살레시오회 그리고 살레시오 가족 안에 성덕의 열매를 수없이 많이 맺는 거대한 나무가 있음을 인식합니다. 이 성인들은 젊은이, 평신도, 순교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충실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내어 주며 사랑의 누룩으로 삶을 가득 채운 사람들입니다.


- (다른 이들과 같이) 성덕의 좋은 열매를 맺은 거대한 나무: 세페리노 나문쿠라, 라우라 비쿠냐, 알베르토 마르벨리, 도미니코 사비오, 알렉산드리나 다 코스타, 아틸리오 조르다니, 포츠난의 젊은 순교자들, 파키스탄의 순교자 아카시 바시르, 원주민 보이보로로 시마오, 후원자 도로테아 초피테아 등 여러 다른 성인들.

- 맘마 마르게리타의 이웃집의 성인 같은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어머니의 성덕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요한의 마음을 형성시켰고, 의식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우리 카리스마의 탄생 안에서 동반했습니다. 그분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함께하며 자신의 삶과 여생마저도 바치신 어머니이십니다.

- 그리고 올해 시성되는 아르테미데 자티를 잊지 맙시다. 그분은 분명 축성된 수도자였지만, 그 성덕의 평신도 차원, 즉 작은 병원과 작은 마을의 소박함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원천으로 자기 삶의 목표와 신앙의 동기로서 삼으며, 매일의 업무에서 이웃들에게 헌신하는 모범이자 모델이십니다.

- 그들의 삶, 그들의 모범은 마치 ‘반죽 속의 누룩’과 같습니다.



6. 오늘날 세상의 누룩과 같은 우리 젊은이들

사회나 개인을 위한 선익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개입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명을 통한 사랑의 협력을 수반합니다. 특히 살레시안의 영역에서 젊은이들의 선익과 전인적 발전에 관련된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복음의 씨앗을 가져옵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건네진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살레시오 운동의 청년 영성을 주장하고 증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성은 사도직과 돈 보스코의 정신 안에서 실현되는 모든 신앙의 경험을 충분히 다루고, 오늘날의 세계에서 살레시오 사명의 주인공이자 수취인인 젊은이들과 일치 및 연대, 친교와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누룩이 되는 일은 정치에서의 헌신과 이에 필요한 양성에 관해 언급한 2020년 생활지표와 매우 진중하게 조화를 이루며, 교회의 사회 교리가 지닌 매우 풍요로운 전통으로부터 다시금 요청됩니다. 바오로 6세는 “정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석하게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단지 엄청난 교육적 공백일 뿐입니다. (…) 평신도를 누룩이라고 말하려면 이 요소를 절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 안에(알베르토 마르벨리) 또는 가까이에 훌륭한 사례(조르지오 라 피라, 줄리우스 네레레 등)가 있습니다.


살레시오 가족으로서 우리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계속해서 동행하기를 원한다는 것,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누룩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며 이를 확신하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젊음이십니다. 그분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젊게 되고 새로워지며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따라서 제가 모든 그리스도인 젊은이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시며 여러분에게 생기가 넘치기를 바라십니다!” 


항상 젊은이들의 상황에 매우 민감하고 주의를 기울이시며, 보다 인간적이고 형제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 인류 가족의 협력이라는 전망에 열린 마음을 지니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열린 세상을 상상하고 이룩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시며 인생에서 진리와 행복을 찾는 유일한 길은 이웃을 사랑하며 열린 마음으로 관대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뿐이라고 강력하게 호소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를 향할 때에 사랑은 모든 이의 마음속 깊이 유대감을 만들고 존재의 폭을 넓혀 줍니다.” 


큰 희망과 신뢰를 가지고 돈 보스코의 온 가족, 특히 이 가족 안에 있는 남녀 평신도 그리고 광범위한 살레시오 운동의 수많은 이들에게 창의적이며 협조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답변합니다. 가능한 모든 것 안에서 2023년 생활지표의 이 겸손한 제안이 진정으로 이루어지길 청하며, 우리 주 예수님이 복음 안에서 말씀하신 누룩과 같이 되어 주시길 진정으로 청합니다.





총장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신부, S.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