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루이지 베르실리아 (Saint Luigi Versiglia)
| 생몰년도 | 1873 ~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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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이지 베르실리아 Santo Luigi Versiglia (1873-1930)

성 루이지 베르실리아 주교는 1873년 이탈리아 파비아 지방에서 태어나 12살 되던 해에 토리노에 있는 돈 보스코의 발독꼬 오라또리오에 들어 갔다.
돈 보스코가 서거한 이듬해인 1889년 살레시오 회원으로 서원을 하고,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22세 되던 해인 1895년에 사제로 서품된다.
10년 동안 로마에서 수련장을 맡아 많은 살레시오 회원을 양성하던 중 선교사로 해외에 나갈 것을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1906년 중국으로 가는 첫 선교사 팀을 이끌고 마카오에 도착하므로 돈보스코의 정신을 극동 지역에 심는 첫 살레시오 회원이 된다. 중국 북경은 일찌기 돈 보스코가 꿈속에서 바라본 미래의 선교지였기 때문에 베르실리아 주교는 돈 보스코의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후 중국 남부 광동성의 쉬우광 지역에 선교지를 개척하며 많은 일을 펼치다 1920년
신설되는 그곳 교구의 첫 주교로 서품된다. 이듬해 선교지에 대한 여러 도움을 청하기 위해 토리노에 온 베르실리아 주교는 "주교님 저를 꼭 중국 선교지로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선교열정으로 가득찬 한 신학생을 만난다. 바로 갈리스도 카라바리오다.
1930년 2월 25일, 주교와 신부, 두 명의 남자 교리교사와 역시 두 명의 여자 교리교사
그리고 여학생 한 명, 이렇게 일곱 명의 일행은 린쵸우 지역을 향해 길을 떠났다.
목적지에 거이 다다른 어느 외진 강가 언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수풀 속에서
12명의 화적들이 한 무리가 되어 나타나 그들 일행이 있는 언덕으로 소리를 지르며
치달아 왔다.겁에 질린 일행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주교와 신부는 여인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화적들의 앞을 가로막고 그들의 돌진을 저지했다.
그 사이 세 명의 여인을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갈대 숲 속으로 숨어 도망가는데 성공한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지 못한 화적들은 주교와 신부를 향해 그 분풀이를 해댔다. 거칠게 폭행하는 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이들은 주교에게 총을 난사하였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주교는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소. 그러나 이 신부는 아직 젊으니까 제발 그 만은 살려주시오."라고 애원하며 숨을 거둔다. 그러나 공산당인 이들은 종교에 대한 증오심과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 그리고 여인들을 놓친 것에 대한 화풀이 등으로 젊은 신부의 목숨까지도 아주 잔인하게 앗아갔다. 이 영웅적인 두 사제들은 그렇게 하여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착한목자의 삶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1983년 5월 15일, 교황 요한바오로2세는 이 두 자랑스런 살레시오회 첫 순교자들을 복자로 선포하였고, 2000년 10월 1일에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하였다.
성 베르실리아와 성 가라바리오의 축일은 오늘 11월 13일로, 이는 살레시오회가 처음으로 해외 선교지에 선교사를 파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