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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 루이지 오리오네 (Saint Luigi Orione)

2009.07.03 04:10 220 SDB
생몰년도 1872 ~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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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이지 오리오네 Santo Luigi Orione (1872-1940)

성 요한 보스코의 고장 이탈리아 피에몬테 태생인 성 루이지 오리오네 신부를 두고 교황 비오 12세는 애덕의 사도이고,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이며, 버림받고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은인이라고 칭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에 오리오네 신부의 시복식에서 그에 대해 ‘성 바오로의 열정과 마음을 갖고 있었던 이라고 말하였다.

 

오리오네 신부는 1872년 어느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짓는 어머니와 도로를 포장하는 일을 하던 아버지를 도와가며 궁핍한 생활의 고단함을 몸으로 체험하며 자랐다. 청소년기의 그의 삶은 다른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3살이 되던 해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지원자로 들어갔으나 그곳에서 채 6개월을 못넘기고 중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토리노 발도코의 살레시오 수도회에 지원자로 들어가 3년동안 지내면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다.

 

이때 오리오네는 성 요한 보스꼬를 아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가졌었고, 돈보스꼬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아 영혼의 순수함이라든지 성모님에 대한 신심과 교황님에 대한 존경, 특히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 등을 자기 삶의 모범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1888년 1월 31일, 돈 보스꼬 성인의 선종을 눈물로 지켜보면서 자기도 성인과 같은 삶을 살 것을 굳게 결심하였다.

 

하지만 오리오네는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지만 하느님께서 다른 길을 마련하시고 계시리라는 믿음으로 아픔을 달래야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토르토나 교구 신학교에 입학한다. 집안이 워낙 가난해 학비를 낼 수 없었던 오리오네는 대성당의 수위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제의방지기 일을 하면서 겨우 학업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신학교를 마친 오리오네는 서품을 받기에 앞서 주교를 찾아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단체를 세울 것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오리오네는 불과 스무살이었던 신학생 때부터 돈 보스꼬의 집에서 배운 대로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주일 오라또리오를 시작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가난하기 때문에 교구의 신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를 열어 많은 젊은이들의 성소를 이끌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성인 오리오네 신부의 여정, 그 거룩한 섭리에서 나오는 영적이고도 물질적인 도움을 널리 전달하는 일생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품을 받자마자 성 오리오네 신부는 고아 청소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농업학교를 세웠고, 이 학교의 출신자들과 은인들을 모아 ‘거룩한 섭리의 은수자’라는 젊은이들의 신심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계속 발전하여 수도회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으며, 마침내 1903년 토르토나의 반디 주교는 ‘거룩한 섭리의 작은 사업’이라 불리는 오리오네 신부의 수도회를 승인하였다.

 

교황 성 비오 10세는 오리오네 신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업을 크게 격려하며 그로부터 청빈·정결·순명의 종신서원을 받는다. 그리고 1908년 시실리섬 메시나와 1915년 마르시카의 큰 지진으로 인한 엄청난 재난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임무를 부여한다. 교황은 그를 메시나 교구의 총대리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 지역은 두 번에 걸친 지진으로 인해 많은 고아들이 발생하고, 건물이 모두 무너지는 등 엄청난 비극을 치렀던 지역이었다.

 

그의 신학생들은 아직 공부를 해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오네 신부를 돕는 가장 중요한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오리오네 신부는 이 학생들을 가난과 기근으로 신음하고 있는 주민들을 돌보는 일에 투입하였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사제들이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외방선교에 눈을 돌려, 브라질에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견한(1913년) 것을 필두로 팔레스타인·폴란드·미국·영국·알바니아 등 세계 각지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1915년부터는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기 시작하여 ‘애덕의 작은 선교 수녀회’ 등 세 개의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 수녀회와 함께, 돌보는 사람이 없어 버려진 환자들과 극빈자들을 위한 ‘성 코토렌고의 작은 애덕사업’을 시작하였다. 그가 세운 이 애덕사업에서는 남녀노소는 물론 종교나 인종, 성별을 불문하고 고통을 당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하였다.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느 곳이든지 달려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는 의지로 열성을 다해 일한 오리오네 신부는 1940년 3월 12일, 68세를 일기로 선종한다. 1980년 10월 2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2004년 5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