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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복자 미켈레 루아

2009.07.03 06:41 191 SDB
생몰년도 1827 ~ 1910

복자 미켈레 루아 Beato Michele Rua (1827-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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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6월 9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9남9매 중 막내로 태어난 미카엘은 1852년에 오라토리오에 왔다. 어느 날 돈보스코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린 모든 것을 반씩 나눠 가질게다.” 그는 돈 보스코로 부터 살레시오회 양성을 제안 받았던 첫 무리 중 한 명이었다. 36년 동안 그는 수도회의 모든 발전 단계에서 돈 보스코의 가장 가까운 협조자였다. 1855년에 서원했고 1860년에 서품 받았다. 그는 26세에 미라벨로의 첫 원장(1863-1865)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700여명의 학생들을 가진 발도코의 부원장과 수도회의 부원장이 되었다. 그는 Letture Cattoliche(가톨릭문고의 관리자였으며 양성과 인사담당자였다. 1875년에 살레시오 수녀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며 돈 보스코의 여행에 동행했다. 창립자의 명백한 요청으로 1884년 교황 레오13세는 그를 돈 보스코의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1888년에 총장으로 인준했다.

 

루아 신부는 철두철미하여 ‘살아있는 규칙서’였고 ‘친절왕’으로 알려질 정도로 매우 사려깊은 부성애도 보여주었다. 형제들의 수가 늘고 사업이 발전함에 따라 그는 살레시오 회원들을 전 세계에 파견했으며 선교단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장기간의 유럽 순방과 중동순방에서 그는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며 항상 창립자를 바라보았다. “돈보스코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던가 돈보스코께서 어떻게 행동 하셨던가 돈 보스코께서 무엇을 원하셨던가”를 늘 염두에 두었다.

 

1910년 4월 6일 루아신부가 선종했을 때 수도회는 33개국에 걸쳐 회원수가 773명에서 4000명으로 집이 57개에서 345개로 관구가 6개에서 34개로 늘었다. 그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렇게 말했다. “살레시오 가족은 돈보스코 덕분에 생겨나 루아 신부 덕분에 지속되고 있습니다.

 

루아 신부는 성인의 모범을 하나의 교육 방법으로 성인의 규칙을 하나의 정신으로 성인의 성덕을 하나의 모델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샘을 강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의 유해는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으며 기념일은 10월 29일이다.